제주시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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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가 최후까지 대몽항쟁을 벌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의 유서 깊은 유적지. 사적 제396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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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18일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135,476㎡이다. 1270년(원종 11) 2월 고려 조정이 몽골의 침입으로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맞서 김통정을 총수로 한 삼별초가 고려의 김방경과 몽골의 흔도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최후까지 항쟁하다 1273년 전원이 순의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이다.

해발 190∼215m 지점에 있는 항파두리 토은 1271년 여몽연합군에 대항하던 삼별초군이 완도에 용장성을 쌓고 주둔하며 활동하다가

여몽연합군에게 패배하고, 같은 해 9월에 제주특별자치도로 들어와 군사력을 재정비하는 시기에 축성한 것이다. 본래 토성(높이 5m, 

너비3.4m)으로 총길이 6km에 이르는 외성을 쌓고 안에 다시 석성으로 800m의 내성을 쌓은 이중 성곽이었으며, 각종 방어시설뿐 아니라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요새였다.

1274년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에게 패배하여 성이 함락되었는데, 그후 근대까지 방치되어 있다가 1976년 9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듬해에 성곽 일부를 보수한 것을 비롯해 현재까지 10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토성 1km를 복원하고 순의비·순의문·

항몽유적기록화》(7폭) 등을 시설하여 국난극복의 교육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유적에 김통정의 전설이 얽힌 곳으로서, 김통정이 토성 위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바위에 파였고 그곳에서 샘이 솟아나게 되었다는

‘장수물’이 있는데, ‘장수발자국’이라고도 하며 여기서 나오는 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아 약수로 알려지고 있다. 또 삼별초 군사들이

과녘으로 사용했다는 ‘살 맞은 돌’을 비롯해 고려 고분, 돌쩌귀, 구시물, 옹성물, 연못지,파군봉 등이 있다.

항파두리 토성의 위치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북쪽 귀일리 해안에서 2.6km 내륙으로 들어온 지점이다. 토성의 동쪽에 고성천이라는 건천이,

서쪽에 소앵천이라는 건천이 있다.

남고북저의 지형으로 북쪽은 토성 부근이 급격한 경사를 이루며, 동쪽은 완만하나 서쪽에는 단애를 이루는 하천이 있어 성을 쌓기에

천연적으로 적합한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한 결과, 남동과 북서쪽으로 가장 긴 쪽이 약 1,458m이고 남서와 북동쪽으로는 가장 짧은 쪽이 664m로 평면이 타원형을 .

이룬다. 북쪽에는 잘 발달된 용천수가 형성되어 있는데 당시 이를 보호하기 위해 보조 외성을 쌓았다.

전체적인 토질은 토성을 쌓기에 적합한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찰기가 아주 강하고 자갈이 약간 함유된 황갈색 토양으로 이루어졌다.

성의 북쪽에서 토성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와요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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